결혼기념일과 야근
5ch VIP 개그 - 2007-02-24 23:02
당시 입사 4년 차이던 내 첫 결혼기념일 날. 그러나 하필이면 그 날 회사에 문제가 생겨서, 아차하면 전 직원이
회사에서 다음 날까지 야근을 하게 될 판이었다. "결혼기념일이니 좀 보내주세요" 하는 소리는 감히 꺼낼 수 조차
없는 그런 분위기였다.
5시쯤 되었을까, T과장이 나를 불러내 봉투를 건내주며,
「이것 좀 K물산에 보내」
라는 것이었다. K물산은 좀 거리가 있는 거래처라서, 지금부터 차로 달려도 8시까지 댈 수 있을지조차 애매했다.
「대신에 그거 보내고나면 집에 돌아가도 좋아」라고는 했지만 바로 집에 간다고 해봤자 K물산에 그걸 보내고
나면 아무리 빨리 돌아가도 11시가 넘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 길이 막히는 것을 감안하면 더 늦을 것이 거의 확실
했다.
불평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봉투를 받았다. 내용을 한번 훑어보려고 하자 그것조차도
「내용은 차 안에서 보면 되잖아! 빨리 가기나 해!」
라는 무정한 T과장. 나 역시도 짜증이 폭발했기에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목소리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과 내의 다른 직원들에게 동정의 눈빛을 받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탄 후 봉투를 열자 서류가
아니라 한 장의 종이조각이.
「결혼기념일 축하합니다. 오늘은 이대로 돌아가세요」
라고 쓰여져 있었다.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울었다.
그 다음 해, T과장은 친가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 퇴사했다. 송별회 자리에서 그 날 이야기를 꺼내며 인사를 하자
「그런 일이 있었나?」
하며 시치미를 뚝 떼기까지. T과장님, 지금쯤 건강히 계실까.

Dark Mage (2007-02-24 23:02)
멋진 상사군요 'ㅅ')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