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가 탄생하려고 한다 ↓ 천황이 신의 위치에 존재하므로 나라의 톱이 될 수 없다 ↓ 그 천황가는 독재를 하려 하지 않는다(언젠가 망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 독재자가 어느 정도 권력을 잡고, 폭주를 시작한다 ↓ 독재자의 폭주에 더이상 참지 못한 누군가가 천황가를 등에 업고 독재자를 잡는다 ↓ 반복
쟈들은 전대갈이나 김일성 같은 강력한 1인 독재 체제가 왜 나타나지 않았는가? 를 물은 듯 합니다. 일본이 수십년간 자민당 일당독재 체제로 다스려진 건 맞지만, 그 안에도 여러 파벌이 있었는데 우왕 내가 짱이다! 다들 내 밑으로 조용히 해! 하고 다른 파벌들을 완전히 찍어버릴 카리스마 있는 인물은 없었죠. 게다가 강력한 1인 독재 체제 구축에 필수적인 게 군통수권으로 대표되는 폭력인데, 쟤들은 미국 때문에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으니...
일본인들은 본인이 나서서 뭔가를 하면 싫어하고, 오히려 뒤에서 일을 꾸며서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독재자 본인이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면서 독재를 하는 건 잘 되지 않고, 흑막으로서 뒤에서 조종하는 식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쪽이 잘 됩니다. 권력자 본인들도 그 쪽이 체질에 맞는 모양이고요. 사실 말이 흑막이지 누가 그 흑막인지는 다들 알고 있기 때문에 순 눈 가리고 아웅인데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흑막과 얼굴마담 쪽에 권력이 분산됩니다. 아무리 얼굴마담이라도 제도적으로 대놓고 꼭두각시면 또 안 되는 모양이거든요.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입니다만, 어쨌든 외관상으로나 제도적으로는 별개의 권력자면서 막후에서만 권한을 행사해야 진정한 권력자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요. 만화나 소설 등에서는 그러면서도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는 게 가능하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지만, 그게 제도적으로 독재를 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 만큼 잘 굴러갈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틀러와 같은 본격적인 독재자는 나오기 힘듭니다. 대신 음성적으로 형성되는 일종의 그룹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외관상으로는 "그런 거 없다" 라는 식이라서 제대로 관찰도 관리도 안 되는, 뭔가 발목을 잡기에는 좋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힘을 발휘할 능력은 없는 진창 같은 게 되거든요.
천황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은 얼굴마담입니다. 만약 독재자 본인이 직접 임명한다면 대놓고 앞잡이인 거지만, 천황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으니 분명히 독립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고, 띄워주기에 명분도 좋고, 그러면서도 천황 본인이 어떤 조직이나 충성스러운 지지자 집단 같은 걸 확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신성한 존재니까 세속적인 일에 일일이 손을 더럽히게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아주 최고지요.
일본인들은 이런 것을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라, 수많은 작품에서 명목상의 최고지도자가 실제로 비전을 가지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그/그녀는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고 실제 실무는 그 최고지도자를 받드는 주인공이 처리하는 식의 구도가 반복됩니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천황제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고 판타지 세계에서도 천황 같은 게 없으면 허전하고 불안한, 뼛속에까지 배어 있는 문화인 겁니다.
정치학 시간에 배운건대, 일본은 언제나 권력과 책임이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천황가와 쇼군가의 분리 (실질적으로야 쇼군이지만), 2차대전때도 육군과 해군의 대립, 군부는 내각에 포함은 되는 것 같지만, 천황직속....독재라는 건 혼자 카리스마를 가지고 일을 하지만 혼자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 책임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도 분산되어 있구요
사실 저런 구도는 뭐... 사실 태국에 가깝구요-_-;;
(태국 왕가는 개화기 당시 처신을 잘해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슴둥. 쿠테타에 성공한 군벌이 정통성을 인정 받기 위해 국왕한테 달려갈 정도로;
일본이야 전쟁->전범처형크리가 있었고
(물론 한국전쟁덕에 많은수가 복귀했다지만-_-)
자민당이 오랫동안 워낙 거대 정당이어서 자민당 내부에서의 파벌쌈이었죠.
천황이 엄연히 살아있는 데 독재자가 되겠다는 건 모반(謀反)이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역사에서는 일본을 장악한 뒤에 자신이 천황으로부터 천명을 받았음을 선전해(그러니까 천황의 권위를 등에 업고)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해왔습니다. 그 동안 무가시대가 그랬고요. 에도시대 말엽에 토막파도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천황의 권위를 빌렸고요. 그래서 일본에서 진정한 의미의 독재자는 천황만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은 아무리 잘해봤자 천황의 신하라는 형식을 벗어날 수 없고요. 실제로 근대 이후 천황이 독재자가 된 적은 있지요. 메이지유신~패전까지. 한국에서도 1910년~광복까지 천황은 한국의 독재자였고요.
우왕ㅋ (2010-11-22 21:11)
내가 1빠라니!!! 이 영광을 애인에게 돌림미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