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5ch VIP 개그 - 2009-02-16 21:02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신흥 주택지에 위치한 곳이라 대부분 학생들도 풍족한 가정이 많았다.
성장환경이 좋았기 때문일까. 이지메나 왕따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명, 반에 모두가 인정하는 가난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7형제의 장남으로, 형제들도 워낙 많았고
부모님의 수입도 변변찮아 매번 급식비 대는 것도 힘겨워했다.
검은 색인 우리 학교 교복은 어디서 물려입었는지 녹색 빛이 감돌 정도로 낡은 지경이었고, 3학년이 되자
갑자기 키가 커서인지 상의가 작아, 팔의 3분의 1 가까이가 밖으로 나와있고 앞의 버튼도 닫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그의 교복이 급기야 등 한가운데 봉제선이 보기좋게 찢어지고야 말았다.
우리는 깔깔 웃다가, 웃으면서 바느질에 자신있는 여학생이 그의 교복을 꿰매어 고쳐주었다. 또 한 명은
「누구, 형이나 근처 사는 사람 중에 우리 학교 교복 갖고있는 사람 없어?」하고 이야기해서, 모두 각자
집에 돌아가 부모님이나 이웃들에게 물어 교복을 찾았다.
다음 날, 두 벌의 윗도리와 한 벌의 바지가 그의 책상에 놓여졌다. 그 날은 반 대항 배구 대회 날이었는데,
교복을 받은 그는 아주 기뻐하며 교복을 손에 들고는
「모두 고마워! 답례로 오늘은 내가 점수 다 딸께!」하고 소리쳤다.
석간신문 배달을 위해 항상 일찍 집에 귀가하던 그는, 어디서 배웠나, 싶을 정도로 배구의 명수였다.
그의 선언대로, 그는 혼자 몇 십점이나 되는 득점을 따내어 우리반은 우승했다.
승리의 그 순간, 남자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축하하는 의미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끌어안았고 마지막에는
헹가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학생들은 또 왠일인지 모두 감동의 눈물.
참 좋은 시대였다.
성장환경이 좋았기 때문일까. 이지메나 왕따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명, 반에 모두가 인정하는 가난한 학생이 한 명 있었다. 7형제의 장남으로, 형제들도 워낙 많았고
부모님의 수입도 변변찮아 매번 급식비 대는 것도 힘겨워했다.
검은 색인 우리 학교 교복은 어디서 물려입었는지 녹색 빛이 감돌 정도로 낡은 지경이었고, 3학년이 되자
갑자기 키가 커서인지 상의가 작아, 팔의 3분의 1 가까이가 밖으로 나와있고 앞의 버튼도 닫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그의 교복이 급기야 등 한가운데 봉제선이 보기좋게 찢어지고야 말았다.
우리는 깔깔 웃다가, 웃으면서 바느질에 자신있는 여학생이 그의 교복을 꿰매어 고쳐주었다. 또 한 명은
「누구, 형이나 근처 사는 사람 중에 우리 학교 교복 갖고있는 사람 없어?」하고 이야기해서, 모두 각자
집에 돌아가 부모님이나 이웃들에게 물어 교복을 찾았다.
다음 날, 두 벌의 윗도리와 한 벌의 바지가 그의 책상에 놓여졌다. 그 날은 반 대항 배구 대회 날이었는데,
교복을 받은 그는 아주 기뻐하며 교복을 손에 들고는
「모두 고마워! 답례로 오늘은 내가 점수 다 딸께!」하고 소리쳤다.
석간신문 배달을 위해 항상 일찍 집에 귀가하던 그는, 어디서 배웠나, 싶을 정도로 배구의 명수였다.
그의 선언대로, 그는 혼자 몇 십점이나 되는 득점을 따내어 우리반은 우승했다.
승리의 그 순간, 남자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축하하는 의미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끌어안았고 마지막에는
헹가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여학생들은 또 왠일인지 모두 감동의 눈물.
참 좋은 시대였다.

현미녹차 (2009-02-16 21:02)
어라 와보니 1등 참 훈훈한 곳이었군요...ㅠㅠ 좀 비현실적일 정도네요.과객 (2009-06-08 20:06)
비현실...스럽나요? 제 때도 저러했답니다... 과거긴 하지만, 저 때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