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정기휴일

5ch VIP 개그 - 2008-11-28 01:11

뉴욕의 교외에는 그 찻집이 있었다.
오직 가게의 이름과

"수요일은 정기휴일"

이라는 공지만 쓰인 무뚝뚝한 간판. 가게의 마스터 역시 과묵하고 완고한 성격.

그 가게의 쥬크박스에는
마스터가 좋아하는, 영국 출신으로 전세계에서 대성공한,
지금은 해산해 버린 한 그룹의 노래 밖에 없었다.


몇 년 전의 요즘 같은 계절.
그 날은 오후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큰 길가에는 비를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그 중 한 명이 가게에 들어왔다.

꽁꽁 언 몸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던 그 남자는,
마스터가 좋아하는 밴드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마스터는 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바로 익숙한 솜씨로 주문된 커피와 마른 타올을 내밀었다. 

몸을 닦고 안경을 닦은 후 커피를 마시며 가게 안을 둘러 보는 남자.
가게 구석에 놓인 쥬크박스에 시선이 닿았다.
자신의 밴드 노래만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쑥스러운 듯 코인을 꺼내 쥬크박스를 가동했다.
흘러나오기 시작한 곡을 들으면서 남자는
스스로가 달려온 청춘시대를 그리워하듯 눈을 감고는  
천천히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몇 곡인가를 듣고 커피를 마신 후 가게를 나서려는 남자에게,
마스터는 아무 말 없이 우산을 내밀었다.
밖은 아직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우산을 받으며, 언제나처럼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비가 내리면 돌려주러 올께요」

그러나 남자는 우산을 돌려주러 올 수 없었다.
몇 주일 후, 남자는 자택 앞에서 흉탄에 쓰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난 오늘도
그 찻집은 똑같이 그 자리에 서있다.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변함없이 과묵한 마스터.
쥬크박스도 같은 밴드의 곡 뿐.
가게 안은 무엇 하나 변함이 없지만,
간판에 쓰여져 있던 글자는 언제부턴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수요일은 정기휴일.  
 다만, 비오는 날은 영업하겠습니다"
 


댓글

ㅇㅇ (2008-11-28 01:11)

감동적이네요

- (2008-11-28 01:11)

멋진 주인!! 저런 카페 열고 싶어요

지나가자 (2008-11-28 01:11)

존 레논의 이야기인가요? 영국 출신의 밴드라면 비틀즈밖에 생각나지 않으니..ㅋ

철기 (2008-11-28 01:11)

영국, 자택앞에서 사막, 밴드란걸 종합하면 존 레논의 이야기인가요?

kenjak (2008-11-28 02:11)

로망이 뭔지 아는 사나이군요. 멋진 마스터.

asynja (2008-11-28 02:11)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있다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마스터 멋있어요ㅠㅠ

타마누님 (2008-11-28 09:11)

마스터: 흥! 네가 비에 젖든 말든 상관 안하겠지만 우리집에서 나간 손님이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내가 꺼림찍해! 딱히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건 아냐! 이 우산 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존레논: 따, 딱히 너에게 고마워서 이러는건 아냐! 이 빚은 꼭 갚아주지! 우산 반드시 돌려줄테니까!
고찰 (2008-11-28 09:11)
저 멋있던 이야기가 그렇게 바꾸니 이런 식으로 변해버리는군요...[씁쓸]
ii (2008-11-28 10:11)
츤데논
막장고3 (2008-11-28 17:11)
마스터: 너무해..왜 죽어버린거야.... 존레논쨩 바보바보바보바보!!!! 죄송해요ㅜㅜㅜ 그냥 한번 해보고싶었어요
미소녀 (2008-11-29 08:11)
덜덜..
고3 (2008-11-29 16:11)
존존 데레데레 존데레^^
치세 히로시 (2008-12-01 18:12)
게시글도 재밌는데 댓글도 재밌네요~ 댓글도 좀 퍼가도 될른지요~ ㅋㅋ

고등학생 (2008-11-28 09:11)

실화라면 정말 대박.

아아 (2008-11-28 09:11)

감동적 이긴한데... 이건 정말인건가? 예전에 '사실은 거짓말이었어. 미안' 씨리즈에 걸려서 인간 불신이...
Gendoh (2008-11-28 11:11)
꼭 실화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면 감동을 느끼는데 방해되지 않을 듯.
아아 (2008-11-29 02:11)
개인적으론 실화였으면 더 좋겠네요 실제로도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싶달까요..

마데카솔 (2008-11-28 10:11)

와아..///

라파군 (2008-11-28 14:11)

...오오 뭔가 감동적인데요?

Kadalin (2008-11-28 16:11)

이메진-

ㅋㅋ (2008-11-28 17:11)

새로운 패턴이다.

c (2008-11-29 10:11)

그냥 우산 하나 사면 되지, 또 그걸 꼭 받으려고.. 라고 생각한 제가 왔습니다.
지나가던 손님 (2008-11-29 12:11)
팬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쓰던 우산은... ㅎㄱㅎㄱ

꼬마 (2008-11-29 13:11)

반전 유머가 등장할 줄 알았는데...예측을 깨고 훈훈한 이야기. 댓글을 보면 유머로 읽히지만. (...)

Ret... (2008-11-29 13:11)

이번에는 댓글들이 깨네요 ;

날작 (2008-11-30 01:11)

아... 뭔가 등장인물들이 해피해지는 단순한 동화식 감동물도 아니고, 단지 은은하게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좋네요. 그동안 재미있게 오래 봐왔었습니다만, 처음으로 스크랩좀 해가겠습니다~

라미네 (2008-12-01 06:12)

은은하니 좋긴한데..... 수요일은 정기휴일. 다만, 비오는 날은 영업하겠습니다 보고 살짝 웃었다는....

ㅊㅇㅇㅇㅊㅁ (2008-12-01 15:12)

실화면 좋겠지만... 저 자체로도 와닿는게 있어서 좋군요

아이 (2009-03-07 21:03)

덕분에 아주 짧은 글을 하나 얻었습니다. 블로그로 퍼갈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