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날 생각이 나네...
고등학생이던 20여년 전... 모 여고 학생들과 5대5 미팅이 잡혔다.
갑자기 생긴 껀수라 꾸밀 시간도 없이 학교에서 바로 출발해야 했다.
친구 가죽 자켓을 반 강제로 빌려입고 약속장소로 달려갔는데,
상대 여학생들의 외모가 심히 비호감이어서 앉기도 전에 난감한 지경.
지금의 나는 여성의 외모를 가지고 이런 식의 비하는 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당시 내 심정으로는, 그녀들이 머릿수가 모자라 골룸과 오크까지 데려온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선 골룸과 오크가 중간쯤 되는 미모였다.)
어떻게든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싶다. 기회를 엿보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 온통 그 궁리만 하고 있는데...
어쨌든 주선해온 친구녀석 (이후 우리에게 엄청 당했다) 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해야 했다.
두 번째 녀석이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더니 "저는 OOO 이라고 합니다." 라며, 내 이름을 대는 것이 아닌가.
저 색휘 지금 뭐하는 짓이야... 라고 발끈하려다 문득, 오호라.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싶어 무릎을 탁!
다들 눈치가 빨랐다. 당황하는 표정은 0.1초만에 지우고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일사분란하게 행동했다.
다음 녀석은 담임선생 이름을 댔고, 다음은 교장선생, 나는 학생주임의 이름을 가명으로 썼다.
물론 그녀들은 알 리 없었다. 우리끼리 키득댈 뿐이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골룸이나 오크들과도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물론 끝까지 파트너 정하기는 거부하고 그냥 다 같이 놀며 마무리했다. 의외로 지금까지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미팅이었다.
후일담으로, 애프터를 신청하는 전화가 왔다. 내 이름을 가명으로 쓴 녀석이, 연락처마저 우리집 전화번호를 줬더라. 괘씸한놈.
제이 (2008-11-02 11:11)
친구를 팔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