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를 구한 남자
5ch VIP 개그 - 2007-10-26 09:10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능극 가부키. 이 가부키 문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한 남자의 큰
공헌이 있었다.
태평양 전쟁 패배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 그 항복조인을 위해 맥아더가 일본에 도착하기 이틀 전,
사전조율을 위해 연합군의 선발대가 일본측 협상단과 회담을 가졌다. 당시 점령당하는 입장의 일본측 협상단
사이에는 상당히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때, 맥아더의 비서관 중 한 명이 일본인 기자단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이렇게 물었다.
「우자에몬은 건강합니까? 그 사람은 요새 뭐하고 지냅니까?」
당시 유명했던 가부키 배우,이치무라 우자에몬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너무나도 뜻밖의 질문이었기에 일본인
기자들이 그것을 깨닫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바로 그 비서관이 훗날「가부키를 구한 남자」로 알려진 포비안 바워즈(Faubion Bowers)였다.
그는 전쟁 직전, 우연히 방문한 가부키 국립극장인 가부키좌에서 봤던 연극「츄신구라」에 마음이 뺏겨,
전쟁 직전까지 일본에 머물며 가부키 관람에 몰두했던 것이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총사령부는 당시 가부키에서도 종종 그 색이 드러나는 일본 문화의「봉건적 충성심」
이 군국주의를 초래했다고 판단, 가부키로 대표되는 고전 예능을 일체 금지시키려고 했다.
거기서 등장한 것이 맥아더의 서기관이었던 바워즈. 일체금지 대신, 제한 상연 목록 이외의 공연은 인정
해주자, 라는 의견을 강력히 주장해 그것을 관철시켰으며 그 제한 상연 목록도 이후 가능한 한 줄여가도록
노력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최대의 난관「가나데혼추신구라」. 가부키 3대 명극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어쨌든
내용상 복수극이었으므로 연합군총사령부에서는 허가를 금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바워즈는 이 멋진 인간
드라마(그가 최초로 봤던 가부키 연극이 그것이었기도 하고)가 그렇게 묻혀선 안된다고 생각하여 주위를
설득, 쇼치쿠 가부키 극단에 우선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바워즈는 허가를 낼 때 쇼치쿠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그 조건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소집하여 연기할 것」
그 말과 동시에, 쇼치쿠 사장이었던 오오타니 다케지로에게 메모가 전달되었다. 거기에는 역할에 맞춘
배우명이 빽빽이 써 있었다.
엔야판관 역을 칸사이 가부키 최고의 명배우 나카무라 바이교쿠, 고노모로나오 역을 기쿠고로(6대),
유라노스케 역을 마츠모토 고시로(7대)라는, 가부키 애호가라면 한번쯤 꿈을 꿔보았을 법한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올스타 캐스팅.
···물론 이 모든 것은 바워즈가 개인적으로 정말 보고 싶었던 드림팀을 구성해본 것w
그러나 어쨌든 당시로서도 확실히 이 멤버는 정말 다시 모이기 힘들 최고의 드림팀이었던데다 오락에
굶주려있던 당시 대중에게는 대인기를 모아 연일 초만원 사례를 이뤘다고.
이후 시간이 흘러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고 일본이 독립을 회복한 후인 1960년. 드디어
가부키의 미국 공연이 추진되었다.
그 때 문제가 된 것이 또「가나데혼츄신구라」
극 중에 할복 장면이 있는 것에 대해 당시 일본 외무성이「이는 일본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내용이니만큼
외국에서는 그 장면의 연기를 불허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던 것이다. (하여간 외무성이 무능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이대로는 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한 할복 장면이 빠진 츄신구라를 공연하게 생긴 참에, 역시 구세주가
뉴욕에서 날아왔다. 현직에서 물러나 뉴욕에 살고 있던 포비안 바워즈가 그 소문을 우연히 듣고는 워싱턴의
일본 대사관에 항의방문한 것이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까! 할복 장면이 빠진 츄신구라라니! 그건 더이상
가부키가 아닙니다!」
전직 연합군 총사령부 고관의 일갈에 외무관료들은 침묵했다.
덕분에 모든 연극은 본래 줄거리대로 연기되었고, 대호평, 미국의 관객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리라ONLY (2007-10-26 09:10)
꺄아~ 1등/// 그런데 바워즈 너무 멋진 거 아녜요?! 일제 시대때도 저런 사람이 일본에 있었다면!